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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전시·공연

대구미술관 전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by 미니버스miniverse 2024. 3. 12.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대구미술관에서 2023.10.31부터 2024.03.17까지 전시하는 렘브란트전에 다녀왔다. 전시 구성이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전시장에 정리된 글을 올려본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대구미술관은 2023년 해외교류전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를 개최한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서양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거장이며, 미술사가들로부터 '렘브란트 이후 판화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판화, 특히 동판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독보적인 판화가였다.
이번 전시는 대구미술관과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순회재단, 벨기에의 판화전문 미술관 뮤지엄드리드가 협력해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자화상과 초상화로 대표되는 유화뿐만 아니라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활용한 판화를 평생 300여 점 남긴 렘브란트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이 발명되기 2세기 전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은 시선으로 17세기의 세상과 당시의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작품에 담아낸 렘브란트의 시선에 주목한다. 전시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점을 자화상/거리의 사람들/성경 속 이야기/장면들/풍경/습작/인물·초상 등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한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렘브란트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고, 그 빛과 어두움, 무엇보다 그의 '세상을 향한 시선'을 함께 나눠 보고자 한다. 이 전시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세상과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던 위대한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자화상 Self-portraits

17세기를 통틀어 렘브란트만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자화상 작품들은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이 들어갔는지를 짐작케 한다. 렘브란트 시대에는 자화상이 다양한 예술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화가에게 자신의 얼굴은 가장 손쉬운 연습용 모델일 것이다. 렘브란트는 레이던에 머물던 시절 주로 자신을 모델로 작업을 했다. 거울을 보며 행복, 분노,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판화에 옮겨 넣었다. 이러한 훈련은 그가 훌륭한 스토리텔러로 발전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자화상 판화는 명함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구매자에게 직접 그린 본인의 모습을 명함처럼 제공하는 것을 두 배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거리의 사람들 Beggars & Streetfolk

렘브란트는 이른 시기부터 일상의 장면들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미 레이던에서 행인, 거지, 거리의 악사 등 거리의 사람들을 판화의 소재로 삼고 있었다. 유명한 프랑스 판화가 자크 칼로가 거지를 소재로 제작한 판화 작품들이 당시 널리 유통되었고, 렘브란트가 그로부터도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시선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있었고, 판화 작품에도 공을 들여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은 렘브란트 화법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이상화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세상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성경 속 이야기 Biblical Scenes

성경 속 장면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가는 풍경, 정물, 인물과 동물, 텍스처 등 모든 분야에 능숙해야 했고, 또한 글을 읽고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렘브란트는 그림을 그리기 전, 미리 상상하는데 매우 능숙했다. 이야기의 특정 시점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과 동물과 같은 조역들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성경 속 이야기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를 이상적인 젊은이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표현했다.
 
 

장면들, 누드 Allegories, Genre Scenes & Nudes

쉬고 있는 나팔 연주자, 도살되기 직전의 돼지와 같은 일상의 장면을 담은 판화도 몇 점 있다. 또한 렘브란트는 책의 삽화, 피리 연주가가 양치기 소녀를 유혹하는 목가적인 장면 등을 판화에 담기도 했다. 이러한 판화의 대부분은 '우의'적 측면, 즉 단순해 보이는 이미지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이미지 혹은 도상은 당시에 보편적이면서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었다.
 
렘브란트는 제자들과 서로 모델이 되어주며 인체의 해부학적 측면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학생들은 모델 주위에 둥글게 둘러앉아 렘브란트가 동판에 작업을 하는 동안 그림을 그렸다. 이때 제작된 판화 작품들은 명백히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여성 누드 습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렘브란트는 이상적인 신체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신체를 묘사했다. 렘브란트는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을 화가로서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풍경 Landscapes

렘브란트의 풍경 판화는 1640년에서 1653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사스키아가 죽은 후 렘브란트가 주로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시기였다. 그는 집에서부터 암스텔강을 따라 도시에서 벗어나거나 들판으로 걸어가곤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릴 종이 외에도 동판을 가지고 다니며 에칭 작업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 작업을 이어갔다. 어떤 풍경들은 그의 상상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렘브란트는 외국에 가 본 경험이 없었지만, 그의 몇몇 풍경 판화에는 산악 지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참고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풍경 판화에는 인상적인 나무들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등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인물, 초상 Faces & Portraits

렘브란트는 노인이나 젊은 여성과 같은 특정 유형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 판화로 제작했는데, 이 판화들에서 그는 강렬한 명암대비 등의 특정 효과를 즐겨 시도했다. 당시 수집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얼굴 판화(tronies, 트로니)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 트로니만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초기 인물 판화 중에는 특정 노인 여성을 묘사한 작품들이 있는데, 렘브란트의 어머니가 모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렘브란트는 또한 약 20점의 공식 초상화를 판화로 제작했다. 렘브란트와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주로 우호적이고 사적인 관계였다. 이 초상화들은 대개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지만 큰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지는 않았다. 의뢰를 받아 제작한 첫 번째 초상 판화는 저항파의 설교자 얀 위텐보해르트를 모델로 한 작품이었다.
 
 

습작, 앨범 Sheets of Studies & Albums

렘브란트는 때때로 에칭 판을 습작에 사용했다. 그는 빠르게 스케치한 일상이나 매우 개인적인 관찰 등 다양한 장면들을 하나의 판 위에 작업했다. 그런 다음 이러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찍어냈다. 이러한 습작 중 몇 점에서는 그의 아내 사스키아가 모델이 되었다. 이 가운데는 병상에 누운 모습도 있는데, 이때는 그녀가 아들 티투스를 낳고 매우 병약해졌던 시기다.
 
렘브란트가 사망한 후, 에칭 원판 80여 개가 연이어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 중 상당수가 원판으로 새롭게 작품을 찍어냈다. 앙리 루이 바산은 1807년 렘브란트의 에칭 124점을 실은 판화집을 출판했다. 원판으로 찍어낸 판화 외에도, 당시 원판이 남아있지 않았던 판화의 사본도 제작되었다. 원판들의 마지막 수집가는 파리 사람 알뱅 보몽이었다. 1906년 그는 원판을 구입하여 소량의 판화를 찍어 냈다. 1916년에는 더 이상 판화를 찍지 못하도록 원판에 잉크를 올리고 바니시를 칠했다. 1993년 이 에칭 원판들의 마지막 소유자가 자신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았고, 원판들은 여러 박물관과 개인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전 세계로 흩어졌다.
 
 
출처: 대구미술관